우산국
우산의 깃발이 내려갔다.
신라의 장수 이사부가 바다를 건너왔고,왕은 무릎을 꿇었다.
스무 해 동안 우산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해돌은 마지막까지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죽었다.
눈을 떴을 때,그는 다시 열세 살이었다.
폭풍이 지나간 아침.마을의 물골이 무너지고,사람들이 남은 물을 세고 있던 바로 그날.
해돌은 기억한다.
어느 겨울에 사람들이 굶어 죽는지.어떤 배가 바다에서 사라지는지.누가 우산을 배신하는지.왕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스무 해 뒤 이사부가 온다.
이번에는 달라야 한다.
흩어진 씨족을 하나로 묶고,배를 만들고,전사를 키우고,바닷길을 열어 누구도 함부로 넘볼 수 없는 나라를 만든다.
그러나 과거를 바꾸기 시작한 순간부터 해돌이 기억하던 미래도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한다.
죽었어야 할 사람이 살아남고,없었어야 할 전쟁이 벌어지고,첫 번째 삶에서는 만나지 않았던 적들이 움직인다.
그리고 마침내 해돌은 깨닫는다.
역사를 안다고 해서 역사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다시 바다로 나간다.
나라를 구할 수 없다면 사람을 구하고,왕관을 지킬 수 없다면 이름을 지킨다.
역사에는 단 몇 줄만 남은 동해의 왕국.
512년,이사부의 함대가 오기까지 스무 해.
멸망을 한 번 살아본 사내가 잊힌 나라의 역사를 다시 쓴다.
사람은 잊어도, 바다는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