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역 재상은 장부를 믿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성문을 닫았다.
마왕은 쓰러졌다.
하지만 왕국의 일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성문 밖에는 삼만 명의 난민이 있었다.
마실 물도, 눕힐 침상도, 나눠 줄 약도, 버틸 시간도 부족했다.
왕국의 문답장부 《책피티》는 질문을 받으면 답을 내놓는다.
식량이 며칠 남았는지.
전염병이 퍼질 확률은 얼마인지.
병참은 언제 무너지는지.
폭동은 어느 날 시작되는지.
장부는 가끔 틀린 답을 내놓는다.
더 위험한 것은,
틀린 질문에 정확한 답을 내놓는 순간이다.
정답은 있었다.
대가 없는 정답은 없었다.
퀀틴 렌 데빗.
왕국의 재상.
모두가 악역이라 부르는 남자.
그는 선의를 싫어하지 않았다.
검산되지 않은 선의를 싫어했을 뿐이다.
용사는 사람을 구한다.
성녀는 기적을 베푼다.
귀족은 애국을 말한다.
왕은 결단을 미룬다.
그들 중 누구도 완전히 틀리지 않았다.
그래서 재상은 더 집요하게 묻는다.
누가 물었지?
누가 승인했지?
누가 죽었지?
그 대가는 누가 치르지?
누구도 완전히 옳지 않고,
어떤 선택에도 대가가 남는 왕국.
기적보다 검역을,
선의보다 증거를,
구원보다 책임을 먼저 묻는 정치 재난 판타지.
악역 재상은 장부를 믿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