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엘은 매일 밤 죽는다.
성소는 무너지고, 하늘에는 붉은 문이 열렸다.
사람들은 살아 있는 채 허공에 매달려 자기 이름부터 잊어 갔다.
그러나 아침이 오자 모든 것은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무너진 종탑도, 죽었던 사람들도, 검은 비에 문드러졌던 인형도.
그날의 멸망을 기억하는 사람은 이세계인 도현과 백월의 구미호 미호뿐이다.
검이나 마법 대신 눈앞에서 일어난 순서를 기록하는 도현.
그가 남긴 종이는 하늘보다 먼저 붉게 물들고, 문은 라엘 사람들의 목소리를 빌려 그의 이름을 부른다.
그리고 도현을 구해 곁을 지켜 온 미호에게도 말하지 않은 목적이 있었다.
이름을 잃으면 사람은 무엇으로 남는가.
기억이 무너지는 밤, 도현은 기록으로 사라지는 이름을 붙잡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