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연기한 내가 나를 삼켰다.
감정 없이 텅 빈 인형처럼 살아온 무명 배우, 백재현.
그가 연기를 시작한 이유는 단 하나, 누군가에게 '기억되어'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타고난 감수성이나 재능 따윈 없었다.
감정을 모르기에 대본 속 인물의 서사와 심리를 뼛속까지 파고들었고,
도서관을 뒤지며 캐릭터를 미친 듯이 해체하고 조립했다.
그 지독하고 압도적인 노력으로 완벽하게 배역을 빚어냈더니,
세상은 나를 '연기 천재'라 착각하기 시작했다.
"신인의 얼굴에 역사의 지층이 있다."
"위험해. 저건 연기가 아니야."
압도적인 치밀함과 계산으로 기고만장한 라이벌의 기를 꺾고,
감독마저 숨죽이게 만드는 서늘한 장악력.
그러나 배역을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믿었던 순간.
내가 해체했던 인물들이 거꾸로 나의 일상을 기괴하게 잠식해 오기 시작한다.
나는 이 지독한 무대에서, 끝까지 나 자신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